2110년
후카야 부부는 1남1녀를 자녀로 두고 있었습니다. 시빌라 시스템의 매칭으로 만난 두 사람은 아주 사이좋게 살고 있었습니다. 열두살 먹은 아들은 시빌라 공립 초등학교를 다니고 있고 밑으로 여덟살 어린 네 살 배기 딸은 곧 공립 유치원에 입학합니다.
아들은 읽기를 좋아합니다. 그래서 후카야 부부는 아들에게 백과사전 전집을 사주었죠. 총 여덟장의 디스크로 이루어진 것으로, 항목별로 각종 분야에 대한 지식이 아주 잘 정리되어 있습니다. 아들은 그것을 책장에 가지런히 꽂아두고 곧잘 꺼내 읽습니다. 후카야 부부는 학력성적이 좋은 아들이 미래에 시빌라 공무원 적성판정을 받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 보기도 합니다. 모든 것이 행복했습니다. 아, 시빌라 사회에서는 이것이 당연한 일이던가요?그러던 어느 날, 아이는 학교에서 집으로 돌아오던 길에 교통사고로 죽습니다.
2112년
중학생이 된 소년은 시빌라 시민이라면 누구나 받는 정기 건강검진을 받았습니다. 시력 검사 결과가 좋지 않습니다. 한쪽 눈이 다른 쪽 눈과 시력 차이가 커서 시력 교정이 필요하다고 합니다. 시력이 좋던 눈이 시력이 안좋은 다른 쪽 눈에 맞춰서 점점 나빠진대요. 대수로운 일은 아닙니다. 지금은 안경을 끼고, 어른이 되면 시력 교정 수술을 받을 수도 있겠죠. 시력 차이가 나는 건 아마 예전에 수술을 받은 눈과의 시력 차이 때문인가 봅니다.
소년은 학교에서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부모님과 안경점에 갔습니다. 레이지의 할아버지도 안경을 썼었단다. 소년의 아빠는 다정하게 말해주었습니다. 새로 산 안경을 쓴 채 유치원에서 돌아온 동생을 맞이합니다. 동생은 안경을 쓴 오빠의 모습이 낯설은지, 오빠의 안경을 만지작 거리면서 웃습니다. "우리 오빠가 아닌 것 같아." 소년도 마주 웃어요.
그 소년은 저입니다.
2110년
아이는 태어날 때부터 한쪽 안구가 기형이었습니다. 그래서 다른 쪽 눈, 그러니까 보이는 눈을 가리면 앞이 보이지 않습니다. 큰 일은 아닙니다. 인공안구를 맞추면 되니까요. 다른 쪽 눈은 멀쩡하고 시력도 여느 아이 못지 않게 좋습니다. 하지만 인공안구를 맞추려면 어른이 될 때까지 기다려야 합니다. 후생성은 인공안구의 비용과 시술 비용까지 지원해주지는 않거든요. 아이는 보육 시설에서 자라서 자신의 부모가 누군지 모릅니다. 알 턱이 없지요. 원장선생님은 서류를 보여주지 않으니까요.
아이는 자신의 부모가 어떤 사람일지 궁금해 합니다. 자신이 태어나자마자 괴물같은 눈을 보고 버렸을까요? 아니면, 아이를 사랑하면서 기르고 싶어했을까요? 그런데 두 분 다 잠재범이 되어 수용시설에 들어가게 되는 바람에 어쩔 수 없이 아이도 시설에 맡기게 된 것일까요? 그렇다면 언젠가 부모님은 자신을 찾으러 올까요? 아이는 여러가지 가능성을 생각합니다.
어느 여름밤에 원장선생님은 보육원생들에게 오래된 뮤지컬을 보여주었습니다. 좋은 뮤지컬입니다. 아이는 유쾌하고 다정한 음악, 격렬한 분노에 찬 음악, 부드러운 발레와 날카로운 탭댄스에 매료됩니다. 뮤지컬의 주인공은 아이처럼 엄마가 없는 소년입니다. 아니, 아빠는 있고 엄마는 없어요. 주인공의 엄마는 주인공을 위해 편지를 써놓았는데, 그것도 아이와는 다른 점입니다.
주인공이 엄마가 남긴 편지의 내용을 노래로 부르자 어린 보육원생들 모두 울었습니다. 아이는 울지 않았습니다. 벌써 열두살인 걸요. 열두살이라고 울면 안된다는 법은 없지만, 이 아이는 아주 많은 생각을 했고 자신의 부모가 어떤 사람이더라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었거든요. 자신을 사랑하는 부모님이 없다고 해도 괜찮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아이는 원장선생님에게 뜻밖의 이야기를 전해듣습니다. 어떤 소년이 죽었는데, 그 소년의 부모님이 아이의 장기를 기증하기로 했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어른이 아니고 지금 눈 수술을 받을 수 있대요. 아이는 이런 것은 생각해 본적이 없습니다. 눈 수술이 성공적으로 끝나고, 죽은 소년의 부모님이 자신을 만나러 오고, 입양을 결정하는 일도 생각해 본 적이 없습니다. 이건 아이가 생각해 본 적 없는 가능성이었습니다. 이런 사랑은 생각해 본 적이 없었습니다.
아이는 그렇게 해서 눈과, 새로운 부모님과, 귀여운 동생까지 생겼습니다. 다정한 양부모님은 괜찮냐고 물어봅니다. 아이는 얼른 대답합니다. 보육원에도 많은 동생들이 있었어요. 동생은 잘 돌볼 수 있어요. 아이는 양부모님이 시빌라 시스템으로 입양 매칭을 해보지 않고 자신을 입양하기로 결정한 것에 감사합니다. 아직은 안했지만 앞으로 해보기라도 하면 큰 일입니다. 자신이 가족에 적합한 아이가 아니라는 판정이 나오면 안되니까요. 아이는 좋은 아이가 되기로 마음 먹습니다. 양부모님이 시빌라의 판정이 틀렸다고 생각할만큼 좋은 아이가 되면 되는 거죠. 그러면 문제 없을거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