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커뮤

1778년

(5462자)


도비니씨는 생탕투안 거리의 사람이었다. 그는 이 거리에서 일을 배웠고 직업을 얻었고 지금의 아내와 결혼해서 정착했다. 그의 소년기와 청년기, 그리고 앞으로의 삶이 모두 이곳에 있었다. 그는 자신의 삶에 썩 만족했고 보통의 사람들만큼의 불만과 가장으로서의 불안을 가지고 있었다. 34살의 도비니씨에게는 두 아들이 있었고 아내가 셋째를 임신했다. 도비니씨의 벌이는 네 가족을 먹여 살리기에는 나쁘지 않았지만 다섯명이 되면 이야기가 다르다. 여느 사람들이 그러하듯이 일을 그만둘 수 있는 처지가 아니었기 때문에 도비니 부인은 부풀어오르기 시작한 배를 안은 채 삯바느질을 계속했다. 뱃 속에 들어선 아이는 사양하는 법 없이 엄마의 영양소를 쭉쭉 빨아들이면서 부인의 눈에는 대체로 피로가 가득했고 자주 졸았다.

도비니 부인은 배가 불러오면서부터 그 위에 옷감을 올려놓고 바느질을 했기 때문에 일감은 자신의 몸에 기생하고 있는 태아를 끊임없이 환기시켰다. 그녀의 생각은 이미 열 달 간의 더부살이를 끝내고 세상에 내놓은 아이들로 이어졌다. 큰 아들은 이번 봄에 생일이 지나 이제 열한살이었고 도비니씨처럼 직공이 되려면 슬슬 도제로 들어가야 할 나이였다. 고된 도제 수련을 견디고 직공이 되는건 열 명에 두 명 꼴이었고 도비니 가족처럼 돈줄이 없는 사람들은 아무도 장인이 되기를 기대하지 않았지만 그래도 공장에서 일하는 것보다는 훨씬 나았다. 무슨 일이든지 배우려면 빨리 시작하는 것이 좋다. 공방에서는 보통 열 살부터 받아주니 사실은 이미 늦었다. 첫째는 손가락도 길고 뭐든 빨리 터득해서 도비니 부인의 일을 곧잘 도왔기 때문에 마음먹은대로 할 수만 있다면 아홉살 생일이 지나고 진작에 보냈을 것이다.

큰 아이는 무늬 들여다보는 것을 좋아했다. 사부작거리던 애기 때부터 도비니 부인이 수선일을 하고 있으면 발치에 앉아 엄마의 무릎에서 바닥으로 흘러내린 천을 가지고 놀던 애였다. 도비니씨는 첫째가 에베니스트 일을 배우면 좋아할거라고 말했다. 에베니스트들은 얇게 썬 장미목으로 가구에 갖가지 문양을 만들었고 그렇게 입힌 가구들은 비싼 값에 팔렸다. 똑같은 가구 직공이라도 에베니스트는 도비니씨처럼 가구에 천을 입히는 타피시에보다 돈을 많이 번다. 그러나 일은 항상 뜻대로 되지 않기 마련이다. 그 해 즈음 도비니씨가 크게 아파서, 아이의 공방수업료로 지불하려고 모아뒀던 돈을 병원비로 모두 날렸다. 도비니씨는 침대에 누워 치료를 받으면서 큰 소리로 궁시렁거렸다. 가난이란 정말 여러가지 방법으로 생활을 방해한다.

도비니 부인은 홈질 하던 손길을 멈추고 안감을 뒤집어 바늘땀을 확인했다. 아이들은 그래도 쑥쑥 잘 컸다. 먹는거에 비해 두 아이 다 키가 또래보다 큰 편이었다. 도비니 부인은 그 연배 여성들에 비해 키가 큰 편이었고 도비니씨는 키가 그만그만했지만 나머지 친가 식구들이 전부 키가 크다. 두 아이는 사이가 딱히 나쁘지 않았지만 각별히 좋지도 않았다. 여섯살 먹은 동생은 형을 부지런히 쫓아 다녔고 첫째는 슬슬 동생이 귀찮아질 나이였다. 도비니 부부는 너그럽고 조용한 사람들이었고 아이들을 자주 체벌하지는 않았지만 가끔 장난을 심하게 치면 호된 엉덩이 찜질을 피할 수 없었다. 염색공장에서는 강으로 폐수를 흘려보냈는데 어느날 형제는 그 강물로 염색을 해보겠다고 널어놓은 빨래들을 몽땅 가지고 갔다. 옷들은 온통 얼룩덜룩하게 물들었고 형제는 그날 그렇게 많이 혼났다.

그정도 사고를 치지 않는 한 아이들이 뭘 하고 노는지 도비니 부인은 자세히는 몰랐다. 사실 아이들은 엄마가 가까이해서 좋을게 없다고 했던 바스티유 성벽도 이미 여러 번 구경하고 왔고 이제는 안갔는데 그건 그냥 그 장소가 지루했기 때문이었다. 두 아이는 파리의 골목 곳곳을 쏘다니며 가게들을 구경하고 센 강변에서 물수제비를 던지고 아까 말한 공장의 염색약이 강물을 따라 어디까지 퍼지는지 따라갔다. 도비니 부인은 바늘에 실을 두번 감아 빼 매듭을 만들면서 입속말을 했다. 첫째는 가끔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모르겠어. 이웃사람들은 큰 아이가 영리하다고 말했고 도비니 부인은 자기 아들이 별나다고 생각했다. 그게 처음 키워보는 아이라서 그냥 그렇게 느껴지는건지 아니면 실제로 좀 특이한 녀석인지는 알 수 없었다. (그러고보니 저녁에 먹을 빵이 남아있던가?) 남편은 이웃사람들 말을 그대로 믿었다. 도비니씨는 큰 아들을 두고 쟤는 영리한 녀석이니까 우리랑은 다르게 크게 살거라고 말했다. 가끔은 술에 취해 집으로 돌아온 다음 자고있던 아이를 깨워서 의자에 붙잡아놓고 그렇게 말하기도 했다. 도비니씨는 선량하고 얌전한 사람이었고 그가 하는 술주정이라고는 그게 다였지만 그래도 도비니 부인은 못마땅했다. 그녀는 잠자다 깨는 것을 아주 싫어하는 사람이었다. 도비니 부인은 팔에 숄을 감은 채 침대 옆에 비스듬히 서서 우리처럼 사는게 뭐가 나쁘냐고, 애들을 깨우지 말라고 잔소리를 했다.

남편은 세금징수원의 고압적인 태도에 기가 죽거나, 돈이 필요한데 휴일이 이어지거나 하면 술을 마셨다. 정말인지 세금을 너무 많이 거두고 나갈 돈은 날마다 올라서… 천의 앞뒤로 바늘이 분주히 오가고, 그런 생각을 하다가 도비니 부인은 까무룩 잠이 들었다


그녀가 잠이 깬 것은 오후 3시 즈음에서였다. 누군가가 문을 세게 두드리고 있었다. 도비니 부인은 잠자다 깨는 것을 싫어하는 사람이었고, 짜증을 내면서 힘겹게 무거운 몸을 일으켰다. 문을 열자 오후의 햇빛과 함께 좁은 골목의 와글거림이 한순간에 밀려들어오는 바람에 그녀는 일순간 어지럼증을 느꼈다. 보통은 우리집 앞에 이렇게 사람들이 많이 몰려올 일이 없는데. 문앞에 서있는것은 도비니씨와 가끔 술을 마시고 노름도 하는 이웃의 G씨였다. 몸집이 큰 그는 문간을 혼자 차지하고 서서 땀을 많이 흘리면서, 두 팔로는 뭔가 큼지막한 것을 안아들고 있었다. 흰 천으로 감싼 그것을 보고 도비니 부인은 처음에는 G씨가 돼지고기를 샀나보다고 생각했다. 잠이 덜 깨어서 그랬는지 왜 그런 생각이 들었는지는 나중에도 몰랐다. 천 밑으로 튀어나와있는 발, 작은 발을 보고 G씨가 집안으로 들어와 그것을 마룻바닥에 조심스레 내려놓을 때까지도 도비니 부인은 그게 뭔지 알아채지 못했다. 옆에 서있던 모르는 여자가 그게 이 집의 작은 애, 도비니 부부의 둘째 아이라고 가르쳐주었다.

길에서 너무 빨리 뛰어나오고 애가 아직 작아서 늦게 발견하는 바람에 마부가 피할 새가 없었다. 도비니 부인은 무슨 소리냐고, 우리 아이가 나이에 비해 얼마나 키가 큰데요, 그런 생각을 했다. 하지만 여자의 말을 가로막기에 앞서 자기 생각이 먼저 가로막혔다. 왜 이제야 발견했을까? 작은 시체 한구를 감싼 천 밑에서는 붉은 피가 스며나오고 있었다. 가장자리는 새빨갛고 가운데는 검붉고 축축하게 젖었다. (둘째는 네 살까지 침대에 오줌을 쌌는데….) 여자는 말을 이었다. 아이는 심하게 다쳤고 그 자리에서 즉사했다. 아이의 형이 아빠랑 친구인 G씨가 근처 가게에서 일한다는 걸 기억하고 도와달라고 불러왔다. 마차 주인은 거리에서 다 알만한 사람이니까 사람을 시켜서 조만간 방문하겠답니다. 여자는 그게 자기의 소명이고 맡은 바를 다 끝내야겠다는 듯이 덧붙였다. 그래도 말발굽 밑에서 끌어냈을 때는 이미 죽어있었어요. 도비니 부인은 그 잔인한 사람이 입을 닥쳤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도비니 부인은 그 여자가 거리에서부터 억지로 끌고 온듯이 옆에 붙들려 서있던 큰 아들과 눈이 마주쳤다. 얼굴이 백짓장같이 하얗게 질리고 입술을 부자연스레 덜덜 떠는 큰 아이는 눈이 이상하게 커보였다. 가끔 확신은 이상한 방식으로 작동해서, 도비니 부인은 큰 아이가 작은 아이의 죽음을 보았다고 직감했다. 그 눈을 통해서 자기도 그 장면을 보는 것 같았다. 진흙 속에 얼굴이 쳐박히고 머리가 으깨진 불쌍하고 예쁜 우리 작은 아들. 도비니 부인은 생전 처음보는 것이라도 되는 양 자기 큰 아들의 얼굴을 바라보다가 마구 울고 소리를 지르면서 주먹으로 손가는대로 아이를 때리기 시작했다. 아이는 울지 않았다. 일하던 중 뒤늦게 소식을 전해듣고 직장에서 뛰쳐나온 도비니씨가 때마침 집에 도착해 부인의 손가락을 애에게서 떼어냈다.


이웃여자들이 도비니 부인 옆에 있어줬다. 놀란 큰 애에게도 술을 한 모금 마시게 하고 멀겋게나마 수프를 해먹였다. 아이는 첫 숟갈을 삼키자마자 바닥에 토했지만 그 다음 숟갈부터는 그냥저냥 넘겨서 따듯한 수프 한 그릇을 모두 먹고 쥐죽은듯이 잠이 들었다. 눈물을 멈춘 도비니 부인은 큰 아이마저도 죽을까봐 걱정이 되는 니오베 왕비처럼 침대 옆에 고요히 앉아 내내 잠자는 아이의 손을 쓰다듬고 어루만졌다.

아이는 저녁 느즈막히 이웃사람들이 모두 돌아가고 나서 잠이 깨었다. 엄마는 큰 아이를 끌어안고 또다시 흐느끼기 시작했고 그 때 마차의 주인과 변호사가 집 문을 두드렸다. 이번에는 도비니 부인은 짜증을 내지 않았다. 아이 아빠가 대신 문을 열었다.

마차 사고가 나면 부상의 위치와 정도에 따라 값을 치른다. 둘째가 어려서 그렇게까지 할 필요가 없는데도 마차 주인은 돈을 아주 많이 치르면서 깊은 애도를 표한다고 전했다. 그는 도비니 가족의 집에 있는 다른 모든 물건을 합한 것보다 비싸고 좋아보이는 옷을 입고 있었다. 그 날의 장면은 막 잠에서 깨어나 엄마의 품에 안겨있던, 또래보다 키가 조금 크고 홀쭉한 소년에게 깊은 인상을 남긴다. 둘째 아이는 영원히 아이로 남게 될 것이었다.


그 돈으로 도비니 가족은 둘째 아이의 장례를 치루었고 고장난 풍로를 고쳤다. 그러고도 상당한 돈이 남아서 그것은 큰 아이가 2년 전에 갔어야할 공방의 수업료로 쓰기로 했다. 필요한 나머지 수업료는 남은 시간 동안 차차 모으면 될 것 같았다.

물론 부부는 동생의 죽음을 본 아이를 걱정하고 남편은 아내를 걱정했으나 대개 그렇듯이 시간이 모든 것을 조금씩 해결해 주었다. 아이는 몇 달간 좀 침울하긴 했지만 어느 저녁엔 바보같은 농담에 소리내어 웃을만큼 쾌활해졌고 도비니 부인의 배는 산달이 가까워서 보름달만큼 크게 부풀어올랐다. 그렇게 해서 해산일과 큰 애가 집을 떠날 날은 함께 다가왔다.

아이를 공방에 맡기면 1년에 한번씩 수업료를 내는 대신 먹이고 재워준다. 운이 좋다면 공방내에서 같이 생활하는 사람들의 옷을 물려 입을 수도 있을 것이다. 도비니 부부는 가구 공방가에 아는 사람이 많았고 당연히 아이를 생탕투안 지역에 모여있는 가구 공방중 한 곳에 보낼 생각이었는데 결정의 순간에 아이는 별안간 고개를 내저었다. 그러더니 자기는 몇 거리 건너 있는 대형 재봉점에 가고 싶다고 말했다. 당황한 부모의 설득에도 아이는 고집불통이었다. 아이는 자기가 그 말을 실제로 하기 전에는 미처 깨닫지도 못했으면서, 벌써부터 생탕투안 지역이 지겹다고 느끼고 있었다. 자기 아버지가 일생을 보내고 자기가 자란 곳에서 벗어나고 싶다는 생각이 직조된 무늬처럼 강렬하게 아이의 머릿속을 사로잡고 있었다.

비록 아이 머리 속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알 길은 없었지만, 도비니씨는 강한 사람이 아니었다. 도비니 부인은 큰 아이가 역시 별나다고 생각했다. 결국 아이는 집 근처가 아니라 팔레 루아얄 근처의 중앙 시장에서 도제 수련을 시작했다. 바스티유 성채의 벽 위로 햇살이 강하게 내리쬐던 그 해 여름의 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