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 연회는 저녁에 있었지만 라자르는 점심부터 베르사유에 미리 와 있었다. 아르투아 백작이 그러라고 했기 때문이다. “손님이 너무 일찍 와있는 거 예의 아니랬는데…” “바보야, 넌 내가 오라는 시간에 오면 돼.” 라자르가 혼잣말하듯 중얼거리자 샤를이 타박을 줬다. 그렇게 해서 페롤 백작의 아들은 다른 손님들보다 먼저 궁에 도착했다. 라자르는 아직 궁전의 위압감 속에서 당당히 어깨를 펴고 있을 만큼 나이를 먹은 애는 못되었고 그래서 샤를이 나와 “내가 불렀어요.”라고 말할 때까지 방 안에 서있는 근위병들과 시선을 마주칠 새라 다른 곳을 쳐다보고 있었다. 어른들은 라자르가 아르투아 백작이랑 자주 지내는 걸 보고 동년배끼리 자연스레 가까운 친구가 되었구나 생각했지만 라자르는 샤를이 자기를 다른 사람 앞에서 친구라고 부르는 걸 한 번도 못 들어봤다. 그게 딱히 싫다는 건 아니었다. 라자르는 샤를이 이 넓은 궁에서 혼자 지내려면 심심할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이제 막 왕위에 오른 큰 형은 국정을 돌봐야 하고, 작은 형은 두 살 차이밖에 안 나는 주제에 윗사람 유세 하는 게 싫다고 했다. 몇 년 전까지 둘은 곧잘 장난감들을 가지고 놀았지만 이제는 대개 특정한 놀이를 하기 보다는 그냥 같이 시간을 죽이고 노닥거렸다. 샤를이 오라고 해놓고 자기 침대 위를 구르며 책을 읽는 동안 라자르도 책을 좀 읽다가 샤를의 방에 있는 커다란 창으로 궁전 정원을 내다 본 적이 30번도 넘었을 것이다. 날이 좋은 날에는 말을 탈 때도 있고, 사냥개들까지 데리고 나간 다음에 대개 빈 손으로 돌아올 때도 많다. 그냥 아무런 빈 방을 찾아서 바닥에 나란히 누워 있어서 천장을 올려다보고 얘기를 하기도 했다. 코트가 더러워지는 건 하나도 신경 쓰지 않았다. 등 밑의 바닥은 차가웠다. 궁의 천장들은 예술에 조예가 없는 라자르가 보기에도 아름다운 그림들로 방마다 다르게 빼곡히 장식되어있어서 그냥 보고만 있어도 별로 지루할 일은 없었다. 라자르는 고개를 돌려서 이런 저런 이야기를 주억거리는 샤를의 옆얼굴을 쳐다보곤 했다.
“뭐야?”
“아니, 그냥.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뭐가?”
“아름다운 궁전에서 살면요.”
“아, 그렇지.”
오늘은 그냥 그 아름다운 궁 안을 거닐기로 했다. 샤를한테 굳이 친구가 필요 없는 건 같이 놀 사람이 이미 많았기 때문이었다. 큰 형의 아내는 아르투아 백작과 고작 두 살 차이였는데, 똑같은 나이인 작은 형과는 달리 ‘윗사람 유세’를 안했는지 아르투아 백작과 잘 어울려 놀았다. 오늘은 왕비는 다른 친구들이랑 별궁 근처에 소풍을 나갔다고 했다. 그러니까 페롤 백작의 아들을 초대하는 건 오히려 아르투아가 좀 쉬고 싶은 날에 가까웠다. 솔직히 말하면 라자르는 샤를이 평소에 뭐하고 지내는지 잘 몰랐다. 라자르는 몇 년 전부터 기숙학교에 다니느라 집에서 떠나있었으므로 방학 때나 샤를을 만날 수 있었다. 한 학기가 지나고 다시 만날 때마다 샤를은 자기가 알던 것과 다른 사람이 되어 있는 것 같았다. 라자르는 아직도 마음속으로는 아르투아 백작을 샤를이라고 불렀다. 존칭은 생각보다 혀에는 쉽게 익었지만 머릿속으로는 아직도 자꾸 까먹기 일쑤였다. “오늘은 여자애들끼리만 소풍가는 거라나.” 아르투아가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걔네들, 있다가 연회에도 오겠지.” 샤를은 복도를 따라 걸으며 창틀을 손가락 하나로 쓱 쓸어보다가 갑자기 멈춰 서서 뒤에서 따라오던 라자르를 뒤돌아보았다.
“근데 넌 연회에서 춤을 안 추는 거야? 왜 여자애들한테 춤 신청 안 해?”
라자르는 솔직하게 말했다.
“할 줄 몰라요.”
라자르는 춤을 출 줄 몰랐다. 라자르는 사교문화에 별로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고 라자르가 충분히 신경 쓰지 않는 것들은 곧바로 손을 빠져나가기 마련이었다. 귀족의 자제들이면 특별히 가정교사를 붙여 춤이나 그림 같은 예술적 교양을 익히게 한다. 여자애들은 대개 하프를 어느 정도 칠 줄 알았고 친인척이 모인 저녁식사 후에 겸손한 연주를 하고 수더분하게 박수를 받았다. 그런데 라자르 주변에는 가정교육에 대해 그럴 이야기를 해줄 적당한 어른이 없었다. 라자르의 아버지인 페롤 백작은 고지식하고 한정된 지식을 갖고 있는 사람이라 아내가 죽은 후 아들의 교육에 대해 그다지 넓은 시각을 가지려는 노력을 하지 않았다. 그건 안사람이 할 일이니 아버지는 잘 모르는 것이 당연했다. 애가 이 나이 즈음이면 어떤 교육이 필요하겠구나 하는 의식이 없었던 것이다. 예법에 대해서는 엄하게 가르쳐 놓았으니 사교모임에 대해서는 친구들이랑 어울리다 보면 어떻게 어깨너머로 알아서 배우겠거니 했다. 물론 페롤 백작은 자기 아들의 친구들이 누가 있는지 이름을 몰랐다.
무엇보다도 지금까지는 아무도 라자르한테 춤을 왜 안 추냐고 물어본 적이 한 번도 없었다. 사람들은 라자르에 대해서 으레 짐작해버리는 이상한 버릇이 있었다. 라자르가 수줍음이 많다거나 말수가 적다고 생각하는 것이 그 예들이었는데, 실제로 말을 걸어보면 라자르가 그런대로 전혀 말주변이 없는 건 아니라고 알게 되는 것이다. 라자르가 자기 입으로 소개한 적도 없었는데 사람들은 약속이나 한 것처럼 꼭 그렇게 생각했다. 춤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였다. 라자르가 멀뚱히 구석에 서 있는 건 라자르가 도무지 춤추게 만들 수 없는 구제불능 녀석이라서 그런 것이라고 생각한다.
“춤을 출줄 몰라요.”
샤를은 퍽 재미있다는 눈빛으로 라자르를 쳐다봤다.
“왜? 배우기 싫어?”
라자르는 어깨를 살짝 으쓱였다. 해본 적이 없으니 하기 싫은지 어떤지도 모르는 게 당연했다. 아르투아 백작은 어른스럽게 웃었다.
“그럼 빨리 배워야겠네, 저녁 시간 전에.”
라자르의 손을 낚아채 잡은 아르투아는 걸음질쳐 복도를 한 번 돌았다. 라자르는 어릴 때랑 똑같네, 하고 생각한다. 아르투아는 한 손은 라자르의 손을 잡은 채 다른 손은 방문 고리 위에 올려놓는다.
“내가 상대해 줄 테니까 지금 당장 익혀.”
라자르는 몸으로 익히는 데는 항상 재빠른 편이었다. 라자르는 자기가 아둔할까봐 꽤 오랫동안 걱정했지만 사관학교에 퍽 빠르게 적응했다. 외울 때까지 끈기 있게 반복하고 체화하는 것이라면 지쳐 나가떨어지는 법이 없었고 몇몇 교사들에게는 칭찬도 받았다. 그리고 라자르는 춤을 추는 법도 총을 바르게 쏘는 자세나 수신호, 대열을 이탈하지 않고 걸음걸이를 맞추는 법을 익히는 것과 마찬가지라는 것을 깨달아가고 있는 중이었다. 아르투아는 손뼉을 쳐가며 박자를 가르치고 무용교사를 흉내 냈다. 샤를은 즐기고 있는 거야. 라자르는 생각했다. 아르투아는 어렸을 때부터 역할 놀이를 좋아했다. 자기가 아닌 다른 사람, 다른 직업과 계급인 척 하고 놀고는 했다. 사냥을 나가는 것도 사냥꾼인 척 하는 거다. 라자르는 그게 어쩌면 아르투아의 특권이라고 생각했다. 아르투아는 왕족이고 특별한 사람이니까, 자기처럼 특별하지 않은 사람 흉내를 내는 특권을 가질 수 있는 것이다. 진짜 사냥꾼은 사냥꾼 시늉을 할 수 없다. 그저 사냥꾼일 뿐이다.
그래서 아르투아의 놀이상대는 언제나 역할을 잘 맞춰주어야 한다. 오늘 라자르는 학생 역을 썩 잘해내고 있었다. 아르투아조차도 라자르가 그럭저럭 습득하자 내심 놀랐다. 심지어 기분이 좋아 보이기까지 했다.
“좋아! 발 동작은 익힌 거 같네. 그럼 이제 나랑 춘다고 쳐봐.”
아르투아의 말에 라자르는 멍청하게 눈을 동그랗게 뜨고 쳐다봤다.
“한심하게 굴지 마. 네가 그러니까 여자애들이 안 좋아하는 거야.”
아르투아 백작이 웃으면서 라자르의 손을 가볍게 그러잡았다. 따듯하고 힘 있는 손이었다. 라자르는 반대로 그 잡은 손으로 힘이 쪽 빠져 나가는 것 같았다. 목구멍 뒤쪽이 간지러웠다.
“아까 배운 대로. 오른 발 내밀고.”
두 사람의 발자국 소리가 바닥을 울렸다. 방 안에는 아무런 음악도 들리지 않았지만 대신 아르투아 백작의 잘 말린 검은 머리카락이 움직일 때마다 등 뒤에서 경쾌하고 탄력 있게 움직였다. 아무도 보지 않는 곳에서 둘이서만 춤을 추는 건 이상할 정도로 쉬운 일이라 기분이 이상했다. 자세를 바로잡느라고 손끝이 라자르의 등을 스치고 마주 댄 아르투아 백작의 팔꿈치가 라자르와 스친다. 라자르의 머리꼭지 위에는 누워서 올려보곤 했던 그 아름다운 천장이 있다. 이전에 들어와 봤던 방이지만 춤을 추면서 보는 방은 처음 보는 곳처럼 느껴졌다. 발걸음을 옮길 때마다 방은 어릴 때 갖고놀던 만화경을 돌릴 때처럼 새로운 코너를 보여준다. 샤를의 눈동자 색. 손톱. 손가락 관절. 하나, 둘, 빙글, 빙글, 빙글… 아르투아 백작이 입을 연다.
“오늘 연회에서는 춤춰야지, 안 그래? 나 계속 쳐다보고만 있지 말고.”
라자르는 덜컥 숨이 걸려 그만 아르투아 백작의 발등을 밟아버렸다.
“아야!” 아르투아가 인상을 찌푸렸다. 백작의 냉랭한 시선이 라자르의 겁먹은 눈과 마주치더니 이내 손을 차갑게 놓아버렸다. 라자르는 서둘러 잘못 내려놓은 발을 거두지만 아르투아는 이미 질색하는 얼굴로 일그러진다.
“야 이 멍청한 새끼야, 이거 하나도 제대로 못해?” 아르투아 매섭게 다그치는 소리에 훅 열이 오른다. 라자르는 자기 얼굴이 하얗게 질렸는지 아니면 빨갛게 변했는지도 몰랐다. 모든 게 너무 빨라서 라자르는 1분 전으로 돌아가고 싶은 생각이 간절했다.
“머저리 같으니! 너랑 보내는 시간이 아깝다. 이제 혼자 해. 이따 연회 때까지 연습해놔.” 아르투아가 이를 딱딱거리며 손가락질로 라자르의 가슴팍을 찔러 댔다. 쾅 소리를 내며 닫고나간 방의 바닥에 창문으로 들어온 오후로 접어든 햇빛이 네모들로 정렬되어 있다. 라자르는 자기 발 실수를 사과하지 못했다는 사실을 깨닫고 혀끝을 깨물었다. 텅 빈 방 안에서 라자르는 아까처럼 손을 들어올린다. 잡히는 것이 없는 손은 아까와 조금도 같지 않다.
그날 저녁까지 라자르는 아르투아를 보지 못했다. 시종의 안내를 받아 연회장에 입장한 라자르는 고개를 두리번거리며 아르투아부터 찾는다. 다행이 아르투아 백작은 방 안에 있다. 자기는 낮에 입고 온 옷 그대로인데, 아르투아 백작은 다른 옷으로 갈아입어서 라자르는 자기가 더 초라하게 느껴진다.
라자르는 아직 샤를이 화가 안 풀렸는지 몰라서 그냥 거기에 서있었다. 아르투아 백작이 바라는 게 뭔지 알 수 없으니까 행동할 수가 없었다. 라자르는 그 오후 내내 떨떠름한 마음으로 혼자서 정말로 열심히 연습했다. 여자애한테 춤을 신청해서 아르투아 백작에게 자기 연습의 결과와 손수 가르쳐준데 대한 감사함을 보여줘야 하나? 오히려 분노를 사게 되는 건 아닐까? 표정이라도 봤으면 좋으련만 아르투아 백작은 라자르를 쳐다보지 않았다. 라자르를 못 본 건지 아니면 그냥 못 본 척 하고 있는 것인지 알 수 없었다. 아르투아는 연회 중반부터 영애 한 명이랑 꽤 정답고 진지하게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라자르는 그 여자 분이 아까 말한 여자애들중 하나일지 궁금했다. 왕비의 친구들.
라자르는 아르투아 백작이 웃으면서 여자를 데리고 연회장 밖으로 사라지는, 테라스로 나가는 모습을 보았다. 라자르가 서있는 쪽 창문에서 보이는 자리다. 라자르는 그러면 안된다는 걸 아는데, 창문에 옆머리를 대고 창문 밖에 보이는 테라스에 서있는 아르투아 백작의 얼굴을 좇는다. 밖의 밤하늘이 두 사람을 감싸고 있었다. 테라스 바닥으로는 연회장의 불빛이 엎지른 촛불처럼 쏟아져 있었다. 대화도 안 들리면서. 저 둘이 내 이야기를 해도 난 모를걸. 근데 내 이야기를 왜해. 난 염탐하는 거 아니야, 창 밖 정원을 보는 거야. 라자르는 자기 마음 속 양심의 가책에 변명거리를 만들어두었다. 아르투아 백작은 방 안에서 책을 읽고, 자기는 창문 밖을 내다보고. 그런 날들이랑 똑같다. 하지만 이번에는 아르투아 백작이 창 밖에 있는데….
아르투아 백작과 이야기하던 여성이 소리 내어 웃음을 터뜨린다. 라자르는 절대로 아르투아 백작과 이야기하면서 저렇게 웃지 못했다. “라자르, 넌 항상 너무 진지해.” 어린 샤를은 종종 말했다. 그 다음에는 이런 말들이 이어서 따라온다. “지루해.” “멍청해.” 라자르는 창문에 얼굴을 대고 있느라 유리창에 자기 얼굴이 비치는 걸 볼 수 있었다. 어두운 밖에 비해 방 안이 밝아서, 유리창에 비치는 상은 낮보다 더 또렷해 보인다. 유리창은 차가워서 연회장의 바고 어수선한 분위기로 어지러워진 머리를 식히는데 도움이 되었다. 라자르는 유리창에 비친 자기 얼굴이 정말로 멍청해 보인다는 걸 눈치 챈다. 라자르와 마찬가지로 테라스에 서있는 두 사람 중 아무도 밤이 되어가고 있는 정원 풍경에는 관심이 없었다. 여자는 테라스 난간을 등지고 서있고 아르투아 백작은 한 손을 테라스 난간 위에 올리고 기대어 있다. 젊은 아르투아 백작의 얼굴이 상대여성의 얼굴로 가까이 기울어 입술로 다가가자, 라자르는 더 이상 이기지 못하고 고개를 다른 쪽으로 돌려버렸다. 라자르는 창문 옆에 걸린 커튼에 얼굴을 묻고 떨리는 숨을 몰아내고 술을 찾으러 가기로 했다. 두 눈으로 보지 못했지만 마음은 끝까지 고정시키고 떼지 못했다.
아르투아는 연회가 파하고 라자르가 집으로 돌아가려고 할 때 즈음이야 다시 나타났다. 이번에는 모른 척 하지 않고 라자르 쪽으로 곧장 걸어왔다. 화가 다 풀렸는지 태연한 표정으로 오늘 연회는 어땠느냐고 묻기 까지 했다. 라자르는 곧바로 대답하기에는 너무 피곤하고 취해있었다. 라자르는 아르투아를 알 수 없는 표정으로 쳐다보았다.
“뭐 할 말 있어?” 아르투아가 물었다.
“오늘은-” “오늘은 내가 연회장에 없었지.” 라자르가 느린 혀로 말하자 아르투아는 라자르를 잠깐 빤히 쳐다보았다가 시선을 다른 쪽으로 돌리고 말했다.
“나한테 춤 안 청했잖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