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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로그]



 내가 형사과가 아니라 공인예술 심사과의 공무원이었을 때, 내 상사는 몹시 안일하고 무능한 사람이었다. 시빌라의 적성평가가 선별한 탁월한 인재도 굴곡 없는 세월 앞에서는 무뎌지는 것일까. 그래도 나는 그런 사람 밑에서 일하도록 판정 받은 사람이니 할 말 없지만.


 이 일을 하면 공인과 비공인을 막론하고 예술가들을 아주 많이 만나게 된다. 정말로 존경할 만한 선생님도 있고 잰 체하는 퇴물도 있다. 나는 대체로 그들에게 애정을 가지고 있다. 아니, 흥미라고 해야 더욱 옳은 것일지도 모른다. 애정이란 상대를 재단하지 않는 것이니까. 하지만 나는 그들의 예술을 재단한다.

 시빌라는 내게 창작의 재능은 인정하지 않았지만 비평의 재능은 인정했다. 예술가들이란 본질적으로는 모두 창조주다. 나는 창조주들 위에 선 자. 이것이 내가 우월감을 느끼는 방식이고 내가 살아가던 삶이었다. 내 삶은 내 것이 아니니까. 나는 다른 사람의 삶을 훔쳐 살고 있는 셈이기 때문이다. 하느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 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그런 오만으로 나는 시빌라 공인 판정을 받지 못하고 낙담한 예술가들을 북돋고는 했다. 다음 심사 때는 공인 평가를 받을 수 있을거에요. 언젠가는 세상이 당신을 알아줄거에요. 때로는 내가 믿지 않는 말로 그들을 위로하기도 했다. 이른 바 선의의 거짓말이다. 그 중 하나는 더 멀리 가서 친구가 되었고, 나는 한동안 그(그녀)와 서신을 주고 받고는 했다.


 그러다가 내가 그(그녀)를 저버렸을 때 모든 것이 틀어졌다. 내게는 변덕이었지만 아마 그에게는 전부였던 것 같다.


 나의 친애하는 협박범!


 편지의 내용은 점점 더 글쓴이의 범죄계수를 우려할 정도로 변해갔다. 나는 시빌라의 시민의 의무를 다했다. 상부에 그(그녀)의 상태를 알렸을 때, 상사는 예의 그 안일하고 무능한 태도로 아무런 조취도 취하지 않았다. 다만, 업무에서 벗어나 개인적인 친분을 쌓은 나를 힐난했다. 나는 그동안 수십번도 더 상사를 내 상상 속에서 죽였지만, 그 날은 특히 더 잔인하게 죽였던 것 같다.


 공안국에 신고할 생각을 안해본 것은 아니다. 그렇지만 어디에 신고해야 하지? 게다가 연락하면 틀림없이 공안국에서 내 소속국 쪽으로 조사를 나올텐데, 그럼 상사는 또 난리칠 것이다. 내 승진 심사에 해라도 끼치면? 골치 아픈 일이다. 거리에는 스캐너도 많으니까, 시빌라 시스템이 알아서 해주겠지. Scaramouch, scaramouch, Will you do the fandango.



 죽이고 싶었지만 죽이지 않았다. 살릴 수 있었지만 살리지 않았다.


"T씨는 잘못하지 않았어요. 잘못된건 이 사회니까."


 나는 아무런 잘못이 없다. 그것이 내가 나에게 한 거짓말. 나는 이 거짓말이 들킬까봐 무섭다.



 그러니, 당신의 자유 의지는 틀려야 한다.



정의를 두려워하지 않고 신전을 경멸하면서

오만한 말이나 행동을 하는 자가 있다면

액운이 따르는 자만으로 인해

불행한 운명이 그를 사로잡으리라.*


* 소포클레스, <오이디푸스 왕>